국회의원, ‘소신 투표’ 하면 안 되나요?…‘당론’과 ‘소신’의 갈림길_동의어 획득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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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저녁, 국회에선 3차 추경안 처리를 위한 표결이 있었습니다. 투표함을 열어 봤더니, 본회의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의아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통합당 등 보수 야권 의원들이 불참한 투표에서 반대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체 187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표, 기권 7표'

미리 기권 의사를 밝힌 정의당 소속 의원 6명과 '잘못' 누른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까지(이후 '찬성'으로 바꿨습니다) 7표가 기권이고 나머지는 다 찬성표를 던졌을 터인데... 도대체 누가 반대표를 던졌을까요?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었습니다.

■ "전체 반대 아니지만 교육 예산 바로잡아야"…결국 '사과'

강민정 의원은 늦은 밤 입장문도 냈습니다.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국회 교육위 소속인 강 의원은 "추경안 가운데 교육 관련 예산에 대한 검토 끝에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등교가 시작된 뒤, 학교 방역 예산이 중요한데 이게 감액됐고 취약계층의 교육 예산도 줄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추경안 전체를 반대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교육 관련 예산 배정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고도 강 의원은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내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3일 강 의원이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알려진 직후부터 주말이 지난 오늘까지, 열린민주당원들이 모인 게시판엔 강 의원을 성토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목만 살펴볼까요? '강민정 의원 뭐죠 뒤통수', '내일 단디 마음 먹고 해명해야 한다' 심지어 '열린민주당에도 금태섭이 있었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물론 소신을 응원한다는 글도 일부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열린민주당 게시판
■ 최강욱 당대표 결국 사과…"초보 정치인의 한계 성찰, 스스로 다잡는 계기 삼겠다"

결국 강 의원, 사과했습니다.

강 의원은 오늘 아침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주말을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다"며 "당원과 지지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사과 말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투표 행위가 당이나 당원 여러분들에게 어떤 파장과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행동을 결정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린민주당 최강욱 당 대표와 김진애 원내대표도 강 의원의 표결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최강욱 대표는 "강 의원의 반대 및 기권 표결이 많은 당원과 지지자분들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서 "초보 정치인의 한계를 성찰하고 스스로 다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애 원내대표도 "추경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원내대표로서 역할에 소홀했음을 당원과 지지자들께 사과한다"고 전했습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이 잇따라 사과한 이유에 대해 열린민주당 관계자는 KBS에 당이 '비례 정당'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비례 후보는 그 당의 이념과 지향 등을 고려해서 선정하는 것이고, 지역구와는 확연히 다른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당론이 없었던 데 대한 절차적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사과가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요약하자면 비례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당의 이념과 지향을 대표할 수밖에 없는데, 사전에 당론을 정하지 않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사과했다는 얘깁니다.

오늘 열린민주당 최고위원회의.
■ "비례후보는 당 이념·지향 고려 선정"…국회법 "의원, 양심에 따라 투표"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강민정 의원의 반대표와 이어진 사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당론'과 '소신'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앞서 열린민주당원 게시판에서도 언급된 인물, 바로 더불어민주당의 금태섭 전 의원입니다.

금 전 의원은 지난해 말 공수처법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당론인 '찬성'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했다는 이유로 지난 5월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경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금 전 의원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서 재심이 진행 중입니다.

금 전 의원이 당시 밝힌 수용 불가 사유 가운데 하나는 이겁니다. "표결을 이유로 의원을 징계하면 앞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재에 대한 의원들의 발언이 위축될 수 있다."

또 하나는 헌법과 국회법입니다. 헌법(제46조2항)은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요, 국회법(제114조의2)은 '의원은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금태섭 전 의원(6월29일 재심 당일 사진)
금태섭 전 의원의 경우처럼, 강민정 의원이 당의 징계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추경안 처리'라는 '대세'에 지장이 없었고, 당사자 본인이 직접 사과한 점도 분명 참작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소신 투표'에 대해 당 차원의 징계 혹은 사과가 이어지는 점에 대해선 생각할 점이 꽤 있습니다.

금태섭 전 의원의 말처럼, 국회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정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금 전 의원의 징계 이후 민주당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본보기 아니냐'며 소신 발언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물론 당론도 중요하고, 지지자들 요구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곳이 국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헌법과 국회법이 그러한 활동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