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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293년 동안 삼도수군 통제영(1603~1895)이 설치돼 있던 경남 통영에는 각종 전통 수공업이 꽃을 피웠다. 통영이 통제영에 다양한 군수품을 공급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 탓인지 대량생산에 밀려 수공업이 쇠퇴한 현재도 통영에는 전통 수공업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돼 있다. 통영산 갓과 나전장, 소목장 등은 전국적으로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나무 발(대발. 대나무를 실로 엮어 만든 가리개)도 통영의 유명 수공업 제품 가운데 하나다. 대나무 발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장인이 바로 염장(簾匠) 조대용(56)씨다. 염장은 대나무로 발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114호인 조씨는 4대(代) 째 대나무 발을 만들고 있다. 그는 35년 이상 대발을 만들어 2001년에는 무형문화재 반열에 올랐지만 현재도 명품을 만들기 위한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조씨는 매일 아침 통영공예전수교육관 작업실에서 발을 엮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옛날에는 발은 태양빛을 가리고 바람은 통과시켜 더위를 쫓아내던 생활용품이자 안과 밖, 남녀를 가르는 `공간분할의 도구'로 널리 사용됐다. 남녀구분이 철저했던 조선시대 양가집 여자들은 한여름에도 대청마루에 나가지 못한 채 안방 문앞에 발을 걸어놓고 더위를 식혀야만 했다. 그러나 주거환경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 위주로 급변하면서 요즈음은 발을 걸어놓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옛날에는 웬만한 집은 다 대발을 갖고 있었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 유품이라며 대발을 갖고 와 수선해 달라는 사람이 심심찮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대발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명주실로 대살을 한올한올 숙련되게 엮어 나가면서 과거 얘기를 들려주는 조씨의 목소리에서는 사라져 가는 전통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났다. 대발 만들기 작업은 먼저 좋은 대나무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본래 통영 대발은 내륙에서 사용하는 굵은 대죽이 아닌 해안가에 자생하는 `시릿대'로 만들었다. 시릿대는 곰방대나 활시위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가는 대나무를 말한다. 바다주변이 개발돼 시릿대가 사라지면서 지금은 진주와 산청에서 왕대(큰 대나무)를 채취해 재료로 쓴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1년 동안 쓸 대나무를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이 기간 채취된 대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대나무들은 물이 올라 있어 쉽게 좀이 먹기 때문이다. 이어 대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4조각으로 쪼개 껍질을 벗기고 칼로 속대를 훑어 내리고 말린다. 새벽 이슬을 맞게하고 햇볕에 말리기를 두달 가량 반복하게 되면 대나무는 본래의 푸른색이 탈색돼 연한 미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대나무 조각을 다시 가는 조각으로 쪼개 1년치를 저장해 놓은 다음 발을 만들 때마다 꺼내 쓰는 것이다. 준비한 대살을 작업대에 걸쳐놓은 뒤 명주실로 한올한올 엮어가면 마침내 대발이 완성된다. 1㎝80㎝ 가량의 대발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석달 가량 걸린다고 한다. 대발 하나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대살의 양만 1천800개에서 2천개에 달한다. 수복강령(壽福康寧) 등 문양을 새겨넣을 경우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조심스럽게 가격을 묻자 조씨는 "700~800만원은 받아야 한다. 석달이나 걸려 만든 시간과 품을 생각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발 만들기는 조씨 집안의 가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전인 조선 철종때 무과에 급제한 조씨의 증조 할아버지가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기다리던 중 대발을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했으며, 이에 철종이 크게 감탄했다는 구전이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면장을 지낸 조씨의 할아버지와 부면장 출신의 아버지도 대발을 만드는 기술이 탁월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과 대발을 접하게 된 조씨는 군대를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염장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이후 한국전통공예전승대전에서 특별상과 장려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 끝에 2001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국가로부터 최고 실력을 인정받고 명예를 얻었지만 조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다른 전통문화 계승자들이 다 겪듯이 장인의 솜씨를 이어받을 마땅한 이수자가 없기 때문이다. 4대째 내려온 가업을 당대에서 끊기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씨는 아들 조영(26)씨에게 대발 만드는 일을 가르치고 있다. 조씨는 "밥벌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겨우 설득해 배우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조씨의 아들은 본업에 매달리면서 이수장학생 신분으로 틈틈이 부친으로부터 대발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다. 조씨는 "내년쯤 만들어 놓은 대발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면서 "35년을 한길을 걸어왔는데 수대에 걸쳐 내려온 전통이 당대에서 끊길까 안타깝다"고 말했다.